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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로 성장한 원태인, 그 배경과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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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유망주에서 삼성이 아닌 KBO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한 원태인. (사진=삼성 제공)

2021년 10월 31일은 KBO리그 역사에 남을 하루였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삼성과 KT와의 시즌 1위 결정전(타이브레이커)이 열렸다. 단일리그 최초의 정규시즌 1위 결정전인 만큼 팬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입장권 1만2천244장이 단 9분 만에 모두 팔렸을 정도다. 그 경기에서 KT는 쿠에바스의 투혼에 힘입어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1위 결정전다운 팽팽한 승부가 이어진 것은 양 팀 선발 투수의 호투였다. 승자인 KT 선발 쿠에바스가 이날의 주연이었다면 삼성 선발 원태인은 주역이자 조역이었다. 경기 전에는 3년 차 신예이며 이해 첫 두자릿수 승리를 거둔 원태인이 단판 승부의 중압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는 이도 적지 않았다.

큰 경기의 부담감을 이겨내며 펼친 호투. 돌이켜보면 원태인은 경북고 시절에도 특별함이 있었다. 고교 3학년 때 맞이한 첫 대회 황금사자기 32강전 영문고와의 경기. 5회 무사 1,3루 위기 상황에서 구원 등판한 그는 5이닝을 2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을 막아냈다. 완벽한 투구 내용 이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5이닝 동안 60구를 던지며 투수가 보여줘야 할 모든 능력을 집약해서 보여준 데 있었다.

151km/h의 빠른 공과 함께 슬라이더도 136km/h를 던지며 ‘구속’과 변화구 구사 능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견제로 1루 주자를 잡아낸 데 이어 8회 무사 1루에서는 번트 타구를 잡아 1-6-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로 연결시켰다. 견제와 수비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당시 KIA 스카우트 팀장이었던 김지훈 두산 배터리 코치는 “정말 대단하다. 스카우트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투수가 보여줘야 할 모든 것을 보여줬다는 것은 ‘스타성’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Tension 긴장 큰 무대에서 강한 빅게임 피처. 어릴 때부터 원태인을 지켜본 손찬익 OSEN 기자는 “팬들이 주목하는, 그만큼 부담감이 큰 경기일수록 더 힘을 발휘하는 투수”라고 밝힌다. 원태인 본인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큰 경기에 약하거나 위축되는 선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그런 경기를 즐기는 유형이에요. 고교 때부터 큰 경기나 위기 상황을 즐겨왔던 게 프로에서도 그런 부담감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경기를 즐긴다. 흔히 듣고 쓰는 말이지만 오해하기 쉬운 야구계 표현이기도 하다. 경기를 즐긴다는 것을 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필드에서 긴장의 끈을 놓는 선수는 없다. 야구와 다른 스포츠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라는 점에 있다.

투수가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포수를 비롯한 모든 야수는 긴장에 빠져든다. 어디로 공이 날아올지 모르기에. 이것은 그 공에 대응해야 하는 타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긴장감은 그 플레이가 끝남과 동시에,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투수가 공을 던지려고 하면 긴장의 세계에 빠져든다. 야구에는 끝없는 긴장과 이완, 그에 따른 부담감이 있다.

반면, 농구나 축구 등은 끊임없는 긴장 속에 플레이를 펼친다. 잠깐의 이완도 없이 경기 내내 태풍이 몰아친다. 야구 이외의 스포츠에서는 정신적인 부담감을 느낄 틈도 없이(물론, 결정적인 장면에서 느끼는 부담감은 있지만, 야구에 비할 바는 아니다), 반복된 연습 속에서 몸에 익은 플레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중요하다.

“평소 경기에서도 자기 능력을 십분 발휘하려고 하지만 큰 무대일수록 아드레날린이 좀 더 분비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힘을 더 발휘하는 것 같아요. 경기를 즐긴다고 해서 그런 큰 경기를 긴장 없이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겠어요. 표현을 ‘경기를 즐긴다’라고 할 뿐이지, 긴장할 수밖에 없죠. 다만 저도 모르게 좀 더 흥분하게 되고, 긴장감도 배가되다 보니까 몸에 힘도 더 나고. 그런 것을 즐긴다고 표현하는 거죠.”

Growth 성장 재작년(2020년)까지 프로에서 원태인의 활약은 젊은 투수 가운데 돋보이지만 확실한 팀의 주축 투수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재작년에는 전반기에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후반기에 8경기 연속으로 패배하며 아쉬운 모습도 나타냈다.

작년에 크게 성장한 데는 데뷔 첫해부터 재작년까지 2년 연속 후반기에 부진하면서도 시즌을 완주한 경험이 밑바탕에 있다. “선발 투수에게 풀타임으로 한 시즌을 뛰어본다는 게 큰 경험이 돼요. 특히 재작년 후반기에는 8연패를 당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퓨처스로 한 번도 내리지 않고 끝까지 기회를 주고 믿음을 주신 허삼영 감독님과 정현욱 투수코치님이 계셨으니까, 제가 작년에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같아요.”

시즌 중에 부진에 빠진 선수에게 팬들은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린다. “성적도 나쁜 데 왜 자꾸 기용하느냐”, “퓨처스에 내리고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게 낫다” 등등. 그러나 선수 성장에 있어 ‘세금’은 피할 수 없다. 실패의 경험을 통해 선수는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게 되고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게 된다. 원태인 역시 마찬가지다.

“제가 크게 부진했을 때 퓨처스에 내려가서 고민의 늪에 빠지고 실패에 대해 자책하며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스스로 줬다면 작년과 같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KBO리그에서 뛰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하면서 많은 시도를 통해 느낀 게 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원태인의 성장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베테랑 포수 강민호다. 손찬익 OSEN 기자에 따르면 “원태인은 평소 (강)민호 형처럼 좋은 포수를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라며 고마움을 나타낸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볼 배합을 투수가 주도권을 쥐지만 일본과 한국에서는 포수가 주도한다. 그러다 보니까 경기 상황이나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전적으로 볼 배합을 포수에게 맡기는 투수도 적지 않다. 과거, 김원형 SSG 감독이 투수 코치 시절에 “볼 배합을 포수가 하더라도, 투수도 생각 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슬라이더라도 볼 카운트에 따라 포수가 그리는 궤적과 속도 등은 다르다. 결정구일 때는 원바운드 볼이 되더라도 강하게 던져야 한다. 반면, 스트라이크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다소 변화 등은 밋밋하더라도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공을 경기 흐름에 따라서는 초구부터 결정구와 같은 공이 요구될 때도 있다. 그런 상황과 흐름을 읽는 눈이 투수에게도 필요하고, 그것이 배터리의 호흡이다.


“(강)민호 형이랑 함께 워낙 많이 했으니까, 이번에 이 사인 나올 타이밍인데라고 생각하면 80% 정도는 들어맞는 것 같아요. 20%는 제 생각과는 다른 데 거기에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민호 형이 은퇴하고 나면 제가 볼 배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아마추어 때부터 제가 볼 배합을 다 해온 것도 있어서 볼 배합에 대한 관심도 많고 타자와의 수싸움도 좋아해서 민호 형에게 많이 배우고 있어요.”


Role-Model 우상 원태인의 롤모델은 “마에다 겐타”라고 한다. “체격 조건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닌데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투구를 하는 걸 보고 저한테 도움도 많이 된 것 같아요. 저는 투구하면서 많이 무너지는 유형이거든요. 마에다를 비롯해 모든 좋은 투수가 그렇지만 중심축이 잘 잡혀 있거든요. 작년에 좋아진 게 중심축이 많이 잡히면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는데, 그런 부분을 많이 참조하고 있어요.”


작년 활약을 통해 이제 원태인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갓 들어온 후배는 물론이고, 아마추어 투수 가운데 롤모델로 원태인을 손꼽는 이가 적지 않다. 그에 따른 뿌듯함과 함께 책임감도 있을 법하다. “분명히 책임감도 느끼지만 뿌듯함이 더 큰 것 같아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선수로 성장했다는 자부심을 느껴요. 그렇지만 그 선수의 롤모델로 남으며 그에 걸맞은 성적을 계속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어요.”


그는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속 향상도 필요하다”라고 생각한다. 2021시즌 평균 구속은 스탯티즈 기준으로 144.4km/h다. 100이닝 이상을 던진 국내 투수 가운데는 배제성과 함께 공동 4위에 해당한다(1위 안우진 151.5km/h 2위 박세웅 145.5km/h 3위 이민호 145.3km/h). KBO리그만 보면 지금도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다.

다만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능력을 평가하는 20-80스케일로 보면 45점(애매한 평균)에 속한다. 게다가, 작년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은 151km/h. 그러면서 20-80스케일의 수치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기준이라면 40점(평균 이하)으로 떨어진다.

 
“저는 투수라면 구속에 대한 욕심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20대까지는요. 구속을 포기한다는 것은 투수 생명을 포기하는 거랑 같다고 봐요. 옆구리 투수가 아니라면요. 지금 평균 구속은 마음에 들만큼 올라는 왔어요. 그래도 더 올리고 싶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부상 위험이나 제구 등도 고려해야 하니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더 올릴 생각은 있어요.”


덧-1, 삼성 후배 투수 가운데 가장 기대가 되는 선수를 말해달라고 했을 때, “여러 선수가 있지만 왼손 투수 이승현”을 손꼽았다. 이승현의 커브는 원태인도 엄지 척! “그래서 커브를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대충 공을 잡고 이렇게 던지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요령을 알려달라고 해서 저도 그냥 이렇게 저렇게 던지면 된다고 했어요.(웃음)”

덧-2, 고교 3학년이 되는 후배 야구선수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이제 드래프트를 앞둔 마지막 1년이니까 다들 열심히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는 고3이라는 압박감에 짓눌려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압박감을 다 내려놓고 자기가 열심히 준비한 것만 잘 보여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프로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글과 영상=손윤, 유효상
[출처] 에이스로 성장한 원태인, 그 배경과 조언|작성자 야반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