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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앤장 뛰쳐나왔냐고? ‘한국의 보라스’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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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KBO 에이전트 ‘야구 없이 못사는’ 강우준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5세에 ‘직관’한 끝내기 만루포…
고교땐 녹화한 야구 봐야 잠들고
서울대 야구동아리선 ‘해결사’로

10년 일한 국내 최대 로펌 나와
박지훈 변호사와 에이전시 설립
낮엔 법조 일, 저녁엔 야구 일

“꿈 좇는 아빠, 더 자랑스럽겠죠?
두 아이가 나의 든든한 후원자”


서울대 법대 출신. 사법고시를 ‘패스’한 뒤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근무. 이 정도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 법조인이랄 수 있다. 경력이 늘면서 ‘독립’했다. 그런데 엉뚱했다. 스포츠 에이전시를 설립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변호사가 운동선수 대리인이라니…. 주위에선 그를 만류했지만, 그는 확신이 있었다. 아니 목표가 뚜렷했다. 바로 한국의 스콧 보라스다.

이렇게 강우준(42) 변호사의 명함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인 에이전트. 강 변호사는 24일 잠실구장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김앤장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소득은 크게 줄었다”면서 “많은 분이 걱정해주셨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김앤장을 그만두려고 하자 선배 한 분은 야구 시장을 직접 분석하고 제가 얻을 수 있는 에이전트 수수료를 계산하면서 말리셨고, 또 다른 선배는 ‘1년 죽어라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염려해준 모든 분이 고마웠지만,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제 아이들에겐 김앤장 변호사 아빠도 좋겠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아빠를 더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믿었다”면서 “9살, 7살인 아이들은 야구의 길을 걷는 아빠를 열렬하게 응원하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덧붙였다.

강 변호사는 2003년 2월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그해 11월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2006년엔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2009년 3월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곧바로 10년 동안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에 몸담았다.

강 변호사는 공정거래 분야 전문. 강 변호사의 몸값은 수억 원을 ‘호가’했다. 그런데 2018년 김앤장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스포츠 에이전시인 MVP스포츠를 설립했다. 2007년 군법무관 시절 만난 박지훈(44) 변호사와 ‘미국의 스콧 보라스처럼 한국의 대형 스포츠 에이전시를 조직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박 변호사의 얼굴, 목소리는 팬들에게 낯이 익다. 종합편성채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고정 패널, MC로 출연해 ‘야구 토크’를 진행했기 때문. 구수하고, 변호사답게 논리정연한 입담으로 궁금증을 시원하게 설명해 인기를 누렸다.

강 변호사는 2017년 KBO 1회 시험에 응시, 에이전트 자격증을 획득했다. KBO 에이전트는 모두 103명. 에이전트는 선수 권익을 보호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직종. 계약 또는 이적 협상을 대리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최근에는 선수의 일정 관리, 미디어 대응, 그리고 은퇴 이후를 설계하는 등 영역이 넓어졌다.

강 변호사가 ‘야구광’이 되는 데, 그의 부친이 큰 영향을 끼쳤다. 서울 출신인 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1982년 3월 27일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야구장에 갔다. 프로야구 원년 역사적인 개막전. 이종도(당시 MBC 청룡)가 투수 이선희(삼성)로부터 끝내기 만루포를 터트리는 장면을 외야 관중석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때 그는 5살. 하지만 짜릿한 함성이 터지는 순간, 어린 꼬맹이는 야구에 매료됐고 그때부터 야구는 그의 일상이 됐다. 한창 공부해야 할 고교 시절, 그의 부친은 매일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들을 위해 야구 경기를 녹화하는 ‘뒷바라지’를 마다치 않았다. 강 변호사는 아버지가 녹화한 야구경기 영상을 본 뒤에야 잠을 청했다. 서울대에 진학한 뒤엔 서울대 법대 야구동아리에서 매주 땀을 흘렸다. 특히 득점권에서 어김없이 타점을 올려 ‘해결사’로 불렸다.

변호사, 에이전트라는 ‘투잡’에 즐겁게 종사하고 있다. 아침과 낮엔 법원 재판, 법률 고객 미팅 등 법조 일정을 처리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프로야구에 몰두한다. MVP스포츠는 10명 안팎의 선수를 관리한다. 포털사이트에 프로야구 중계화면을 4분할로 띄우고, 소속 선수들의 컨디션을 살핀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엔 소속 선수, 야구인들과 점심, 저녁 약속이 빼곡하다. 지난겨울엔 한화 외야수 이성열의 자유계약(FA) 협상에 전력을 쏟았다. 이성열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각종 데이터 자료만 20페이지 넘게 마련했고, 한화 구단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프레젠테이션(PT)까지 했다. 강 변호사, 아니 강 에이전트는 “선수의 몸값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지 한다”면서 “에이전트로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가장 신경 쓰는 건 리스크 매니지먼트, 즉 위험 관리다. 음주운전 등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유명 선수들을 대리, 관리하면서도 사고가 터지면 ‘나 몰라라’하는 에이전시도 있다. 그는 “선수들이 지닌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업무도 중요하다”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선수도 많은데,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지 변호사, 에이전트에 앞서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이고, 제가 어렸을 적에 타율 계산 등을 하다 보니 수학 학습력이 크게 늘었다”면서 “그래서 학습지 풀이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부모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자녀들이 야구 보는 걸 혼내지 마시라는 것”이라면서 “물론 야구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건 곤란하겠지만, 적절하게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는 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수리력과 응용 및 창의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프로야구 에이전트 제도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에이전트가 관리할 수 있는 선수의 수는 구단당 3명, 에이전시당 15명으로 제한됐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프로계약 대리를 금지하고 있다. 그나마 배구, 농구 등 겨울 스포츠는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 강 변호사는 “대리인을 세우는 것은 (혼인·유언 같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로서 인정돼야 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몇 달 전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야구팬, 시청자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강 변호사는 스토브리그의 현실화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그는 “프로야구는 정규리그, 포스트시즌뿐만이 아니라 스토브리그도 참 재미있는 스포츠”라면서 “드라마처럼 극적인 요소가 없더라도, 에이전트로서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펼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세영 기자 [email protected]